>1594125233> 문과식 끝말잇기를 하는 정도의 어장 (15)
익명의 참치 씨
2020. 7. 7. 오후 9:33:43 - 2022. 2. 12. 오후 12:5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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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익명의 참치 씨 (1463428E+6) 2020. 7. 7. 오후 9:33:430 끝맛잇기의 기본규칙과 같다. 이하는 다른 점
1 1문장 이상 쓸것. 즉, 본 어장의 끝말잇기는 단어가 아닌 문장위주다.
2 끝에 두음법칙이 적용될 경우, 적용합니다. 문장의 끝이 잇기 어려운 단어일 경우, 그 앞의 글자를 고릅니다.
3 규칙에 어긋난 것은 무시합니다.
그럼, 시작합니다.
1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
1 익명의 참치 씨 (9186372E+5) 2020. 7. 8. 오전 2:10:372 다가갈 수 없이 시린 눈동자들이 차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창 밖은 대기마저 흐려 냉기가 선히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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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익명의 참치 씨 (6819828E+6) 2020. 7. 8. 오전 5:48:16다분히 주관적인 의견이지만, 내가 창 밖을 보고 있다면 창 밖도 나를 보고 있지 않을까. 환영하는 것도 같고 경계하는 것도 같은, 하늘에서 뿌려져 흩어져가는 눈송이에 눈을 맞추어 보았다.
"저걸 봐, 현. 내리던 눈이 바람에 날려서 거꾸로 올라가고 있어." -
3 익명의 참치 씨 (2064252E+6) 2020. 7. 8. 오전 10:40:57어물쩍 거리며 날리던 눈송이가 막 베인 그루터기위에 앉았다. 서로 낯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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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익명의 참치 씨 (7712468E+6) 2020. 7. 8. 오후 12:44:09"다음 역 까지는 얼마나 더 가야하지, 량?"
신호소에서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눈을 감고 팔짱을 낀 채 내 말을 무시하던 현이 물었다.
"글쎄, 나는 운전수가 아니니까 몰라. 하지만 내리는 눈을 보면 한~참은 남았을지도." -
5 익명의 참치 씨 (5072579E+6) 2020. 7. 8. 오후 12:58:10"도착하기 전에 이러다 얼어죽는 거 아니야?"
현이 투덜거렸다. 여전히 눈은 뜨지 않은 채였다.
"도착하면 깨워."
그 말 한 마디를 남기고는 모자를 얼굴에 덮어 버리는 현이었다. -
6 익명의 참치 씨 (3908118E+6) 2020. 7. 9. 오후 4:58:37"다시 자기냐... 일어났으면 말 상대라도 좀 해주지."
나는 잠에 들려는 현에게서 다시 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의 손가락이 떨리는 걸 보았기 때문이다.
나름 차분한 척 하지만, 내심 그도 불안하리라.
이 열차는 전장으로, 우리들의 사지로 향하고 있으니까. -
7 익명의 참치 씨 (3652417E+5) 2020. 7. 9. 오후 6:35:02까먹을 법하면 번번히 떠오르는 사실.
우리는 지금 한가롭게 여행이나 가는 게 아니었다. 열차가 종착역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우리들의 목숨은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게 되겠지.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은, 그저 즐기고 싶었다.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는 휴식을. 그렇게 생각하며 창밖을 보다 다급하게 현을 불렀다.
"현, 저길 봐! 숲 속에 사슴이 있어!" -
8 익명의 참치 씨 (9474257E+6) 2020. 7. 9. 오후 8:23:25어리고 여린 사슴 한 마리가 떠돌듯 갈 곳 없듯 다리를 휘적휘적 교차한다. 그 모습에 의아함을 가지려던 찰나에 잡목림 사이로 튀어나온 그림자가 보였다. 나무껍질이 둔탁하게 패이고 사슴의 머리가 떨어져내리는 모습은 기차 소리에, 기차 속도에 덮여 단말마도 남기지 않고 나무들 사이로 사라져갔다.
"사슴?"
"아니, 바위를 잘못 봤나봐. 미안, 현."
"뭐야..."
현은 찌푸린 얼굴로 군복 모자를 다시 얼굴에 눌러썼다. 나도 괜히 남색 모자를 만지작거렸다.
우리가 미래에 흔히 볼 수 있을지도 모를 광경이다. 보급도 잘 되지 않은 최전선에서는 식량이 오지 않았을 때 동물이나 식물의 시체를 먹는다는 소문이 있었다.
자신들도 굶주리면 같은 생명인 나무나 사슴 같은 것도 먹게 될까. 생각하기만 해도 위에 있는 푸드가 역류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러건 말건 기차는 야속하게 목적지를 향해 내달렸다. -
9 익명의 참치 씨 (6940672E+5) 2020. 7. 10. 오후 12:38:14다음날의 해를, 우리는 볼수있을까.
저 너머의 구릉 속에서. 먼저 간 친구들은 어쩌고 있을까.
북이든 남이든 우린 한 겨례일텐데. 어째서 총을 들고 싸우는 지, 나는 알수 없었다.
기적 소리 뒤로, 어린 사슴의 울음소리가 귓가에 맴돌고 있었다. -
10 익명의 참치 씨 (6325721E+6) 2020. 7. 10. 오후 6:25:23다그닥, 다그닥.
귓가에 어린 사슴의 발굽 소리도 들려왔다.
아니, 발굽소리인가? 그렇다기엔 너무 선명했다.
마치 편자를 댄 말발굽 소리처럼.
"...이 소린 뭐지?"
옆에서 간신히 잠에 들려던 현도 반쯤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말발굽 소리는 기차의 경적 소리와 덜컹거리는 차체의 소리에도 불구하고 점점 커졌고,
계속 창밖을 보고 있었던 나는 소리의 원인을 쉬이 발견할 수 있었다.
"북부군...!"
"말도 안돼! 그럼 전방에 있던 우리 군은?"
허나 현의 질문에 답할 사람은 여기에 없었고,
창 밖으로 보이는 북부군 용기병 부대 중에서 한명이 손끝을 땅으로 내리며 누군가에게 신호하자,
달리던 열차의 앞쪽에서 콰앙 하는 소리와 함께, 천지가 뒤집어졌다. -
11 익명의 참치 씨 (7216889E+5) 2020. 7. 11. 오전 12:03:45다 거짓말이길 빌었다. 그러나 소원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제대로 떠지지 않는 눈꺼풀을 겨우 들어올려 목격한 광경은 정말이지 처참하기에 그지 없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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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익명의 참치 씨 (9662209E+6) 2020. 7. 15. 오후 6:19:23까칠한 감촉이 느껴져 손끝으로 밀어보니 유리 조각이 묻어나왔다.
나는 다급하게 현을 찾아 고개를 돌렸다. 조금 떨어진 곳에 기울어진 차체와 함께 현이 쓰러져 있었다.
"현, 정신차려봐! 북부군의 습격인 것 같아. 빨리 여기서 도망쳐야 해!"
"랑... 나는 괜찮아. 뒤쫓아갈테니 어서 도망가." -
13 익명의 참치 씨 (8281839E+6) 2020. 7. 16. 오전 10:29:08"가라고? 널 두고? 그랬다간 추 교관이 날 죽이려 들걸.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 말고 빨리 일어서!"
"무리야." 내 농담에 피식 웃으며 현이 자신의 다리를 가리켰다.
차량에 깔린 그의 왼 다리가 보였다.
"우리 둘, 아니, 너 하나 만으로 차체를 들어올릴 수도 없고, 설령 내 다리를 잘라내 도망친다고 해도 지금 상황에서는 지혈도 못해."
자신의 소총을 지지대삼아 다리가 허락하는 한 상체를 일으키려고 하는 현이 말했다.
"북부군의 용기병에게서 도망치는데 다리 잘린 병신이 곁에 있으면 추적당하기 더 쉬워질 건 자명하고. 그러니까 내 가방 속 탄창이나 던져주고 어서 가."
"이 논리적인 개자식이."
내가 중얼거렸다. 항상 그랬다.
어느모로 보나 정신 빼놓고 사는 듯한 나는 어느때나 항상 이성적으로 굴던 현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추 교관도 내게 현이 아니었으면 나는 진작에 군에서 쫒겨났을거라고 자주 말했었다.
그런 현에게 받은 도움을 하나도 갚지 못했는데, 다가오는 적들에게 그를 버리고 도망가라고?
절대로 그럴 수는 없었다.
'미안, 엄마. 약속은 못 지키겠네.'
나는 손 끝에, 돌아가신 어머니가 절대로 남 앞에서 쓰지말라던 노란 빛의 힘을 일으키며 현에게 다가갔다.
"야, 현."
"뭐야, 아직 있었... 응?"
"자를게."
"야, 잠, 그 뭔... 흐으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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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부군의 자랑이자 승리의 상징인 용기병대의 소대장 던스는 지금 상황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누구보다 용맹한 자신과 거의 자신만큼이나 용맹한 그의 부대원들에게 침투 작전이라니.
당장 마주하는 남부 국경지대의 보급로와 지원 병력을 제거한다는 작전 자체에는 불만이 없지만, 그런 걸 수행하는데 있어서 좀 더 적합한 부대가 있지 않겠는가.
게다가 단순한 지원 병력과 물자만을 실은게 아닌, 민간인도 탑승한 열차를 날려버리라니.
이념과 신념을 걸고 싸우는 남부군이라면 몰라도, 저항도 못하고 도망치는 민간인을 전부 쏴죽이라는 명령을 마음에 들어할 정도로 던스는 악마가 아니었다.
하지만 악마가 아니라도 던스는 군인이고, 쓰레기 같은 명령도 명령이다.
혹시나 남아있을 생존자들을 부하들이 처리하는 동안 던스는 안장 위에서 가만히 담배를 피며 기다리기로 했다.
"던스 소대장님! 특이사항 보고드립니다."
"음? 뭔가."
"그... 튀어나간 열차의 차량 중 하나가, 조각나 있습니다."
"...뭐?" -
14 익명의 참치 씨 (9109808E+5) 2020. 7. 17. 오후 6:26:38"뭐라고? 잘 안 들려!"
"이제 어디로 갈거냐고! 마냥 도망칠수도 없잖아!"
그 말에 눈보라 속을 걷던 걸음을 멈추고는 뒤를 돌아보더니 먹먹한 귀 탓에 커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마차를 대여해 주는 여관에 갈거야! 거기라면 사람이 많아 숨을 수 있겠지!" -
15 익명의 참치 씨 (8jLox8/Gcw) 2022. 2. 12. 오후 12:54:01지상에는 괴물들이 있고, 지하에는 사람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