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2031419> 일단 뭐라도 끄적여보자 (4)
(Null)
2017. 8. 6. 오후 11:56:49 - 2017. 8. 10. 오후 5: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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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Null) (8084704E+5) 2017. 8. 6. 오후 11:56:49그냥 뭐라도 끄적이며 심신을 달래보자.
적어도 이게 더 마음 가라앉히기는 더 생산적이겠지. -
1 (Null) (7288044E+5) 2017. 8. 7. 오전 12:35:35딱히 뭔가를 쓴다는 느낌으로 적기 보다 자동기술법으로 막 써보도록 한다.
하늘이 터지던 날, 새하얗게 변한 세상은 이제 아무런 움직임도 느껴지지 않았다. 공백의 소용돌이가 주변의 모든 색들을 삼키며 천천히 세계를 하얕게 물들여간다. 표백된다. 탈색된다.
이것은 너와 나 모든 존재하는 것들이 끌려가기전에 마지막으로 적어보내는 유언장. 이 기록마저 언젠가는 전부 산산히 흩어지겠지만. 의미 하나 남겨지지않고 모조리 사라질테지만.
그럼에도 흔들리는 손가락에 재차 힘을 주고 다시 적어내려간다. 당장 쓰러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당장 미치광이들에게 휘말려 정신이 쪼개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문 틈이 흔들린다. 황소바람이 가뜩 숨을 몰아쉬며 성을 낸다. 곡소리가 스산한 기운을 타고 널리 울려 퍼진다. 찢어지는 비명과 끽끽대는 광소狂笑가 나란히 메아리치는 밤하늘을 이불삼아 자리에 눕는다.
나날이 무너져만가는 세상으로부터 얼마나 도망칠 수 있을지, 장담 하나 못하지만 적어도 오늘 하루만큼은 글씨 하나 쓰고 잘 수 있다는것에 만족하며 하루를 마친다.
잘자요, 여러분.
설사 죽음이 찾아올지언정 항상 그는 내일 찾아오리란걸 알아요.
적어도 내일까지는 고요한 밤과 평안한 밤을 맞이할 수 있기를.
안녕히 주무세요. -
2 (Null) (7288044E+5) 2017. 8. 7. 오전 1:19:34재앙아 어디로 향하느냐. 부어야 할 내용물을 어디에 놓고 황야를 헤메느냐.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인과는 반드시 따라와 응보를 치르는 법이건만 죄인이 마땅히 치러야할 값을 저울질할 형벌의 천사가 눈을 잃고 추락하니 주인 잃은 솥이 홀로 끓어 넘치는구나.
껍질만 남은 정의, 눈먼 징벌자의 피아없는 단죄. 영원히 끓어오르는 솥의 증기가 세계를 가득 메꾸더니 하늘을 떠받치던 네 기둥은 삭아 기울어지다 마침내 밑동만 남기고 모조리 무너지니
옛 법도의 먼지만을 기억한 채 저마다 잃어버린 천상의 편린을 쥐고 자신이 옳다고 외치니 뜻은 가상하되 속은 아귀다툼뿐이더라.
누구나 엉망진창인 세계를 비난할 수 있으나 누구도 진정 영원한 법도를 온전히 알지 못해 평안한 질서를 세울 수 없으니.
뿌리 깊은 절망만이 땅속 깊이 내려앉아 천천히 모든 이들을 심연으로 가라앉힌다. 멀어진다.
그 누구도 단 한 조각의 기억조차 갖지 못하는 그 날까지. 우리 모두 재앙의 솥 아래로 침전할 떄까지. 지옥이 완성되는 그 날까지. -
3 (Null) (5564085E+6) 2017. 8. 8. 오전 12:39:01얼굴 없는 자들이 일어선다.
무너진 탑을 일으키고 계곡을 헤집으며 아래로 아래로 영원한 향토의 꿈을 따라 발걸음을 옮긴다. 절망하는 자들이 그 뒤를 이어 따라가니 어기적어기적 팔잃고 다리 잃은 몸뚱이들이 자취에 홀려 그들을 쫒는다.
미치광이들은 저 멀리서 제 몸을 불사르며 환희하고 제 몸을 던져 산과 바다에 산산히 흩뿌린다. 찌그러진 혈육 사이로 아귀무리가 앞다투어 이빨을 가져대니 깡마른 몰골속 괴이한 힘이 사방의 솟아난 물건들을 모조리 껃어댄다.
선지자들이 바라본 눈은 진작 단두대 위에서 세상을 관망하고 도둑의 발이 그 옆에 나란히 놓여 파리떼와 구더기를 불러 일으킨다. 병사의 창칼은 자연스럽게 내장을 찌르는데 튀겨나온 담즙에 실명한 눈이 아직도 그 자리에서 썩고 있다.
고양이 조각파이가 탁상에 널부러져 놓여있고 시궁쥐들은 호시탐탐 뻇긴 영토를 찾기 위한 눈치로 거리를 쨰려본다. 정육점의 창자를 받아먹던 까마귀의 깃털에는 고풍스런 심이 박혀 서재로 향해지고 죽은자들은 달밤을 피해 부엌으로 숨어든다.
천사들이 낫을 휘두르면 떨어진 목뼈를 주우려고 달려드는 마귀들의 한 차례 소동에 박장대소. 한 자루 칼을 쥔 소녀가 방문을 열어 왕의 목젖을 절단하니 그 맛은 가히 어디서도 맛볼 수 없는 풍미더라.
망가진 존재들이 마침내 모두 광장으로 모이면 우리는 크게 함성을 지르고 하늘을 불태울 것이니 오로지 바치고 바치고 재차 심장을 도려내 만천하에 모든 존재에게 제 피를 마시게 만들겠노라 맹세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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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Null) (0221472E+5) 2017. 8. 10. 오후 5:47:00비오는 별바다의 꿈이 아련히 흘려들어오는 여름밤의 막바지.매섭게 쏟아대던 소나기의 시간도 어느덧 지나가버리고. 외딴 오두막서 처량히 울던 아이는 너털너털 지친 몸짓으로 그믐달과 함께 그림자 너머로 사라져갔다.
밑동만 남은 고목아래로 게슴츠레 눈동자만 굴리던 승냥이가 호시탐탐 기회만 엿보고. 달짐승의 다리는 지면 아래 단단히 붙들린채 숨죽여 새가슴의 고동을 쥐어 삼키었다. 수풀을 헤쳐 산길을 타고 내려가면 마침내 마음 놓을 자리로 돌아갈 수 있으련만.
사방에서 번뜩이는 희멀건 이빨들이 어서바삐 산산조각 찢어보자는 희열에 취해 춤추고 노니 감히 몸을 함부로 빼기는 커녕 사시나무 떨듯 흔들리는 수족을 간수하는데만 급급하기 짝이 없더라.
흠뻑 젖어버린 옷가지. 앞서 길동냥하여 얻은 낡은 바가지. 진작에 챙겨놓은 나뭇가지. 마지막으로 하늘의 별과 그믐달이 내리쬐는 빛이 전부니 나름 길을 나설 채비는 다 해둔 셈이였다.
어여바삐 골짜기를 넘어 산기슭을 헤치며 멀리멀리 발을 굴려야하니 걱정할 시간조차 아까울 따름이다. 이 여로의 끝에는 바삐 소식을 전해 식구를 안심시키곤 천수를 누리는 길이 펼쳐져 있으니까.
그간 어머니는 편히 계셨을까. 아우는 무럭무럭 잘 커왔을까. 옆 집 딸래미는 아직도 왈가닥인걸까. 소식이 끊겨 살아온 지 어느덧 3년째. 해가 지고 어스름에 세상이 잠길때마다 가슴에 맺힌 아릿한 멍울만이 남겨져
홀로 부둥켜 구슬프게 흐느끼던 지난 날들이 마침내 눈 앞으로, 코 앞으로 성큼 다가오게 되었던 것이다. 이제와서 더는 참을 수 없다. 꿈속에서 항상 그리워하던 내 땅 내 안식처가 조금만 움직이면 직접 맛보고 눈에 새겨넣을 수 있으니까.
가득 기대에 부풀어오른 가슴은 더욱 요동치니 가쁜 호흡과 눈 먼 다리가 활개를 치며 내달리고 있던 것이었다. 설사 당장 앞에 부정거리가 놓여있다는것조차 모르고.
고향땅을 밟으며 가고 있다는 안도감이 문제였던걸까. 근방 길은 전부 알고 있다고 자만하던 것이 문제였던걸까. 흥분한 채 젊은 혈기를 사방으로 뿜어대며 승리감에 취해 있던 나머지
그간 잊고 있었던 부정거리에 미처 신경을 쓰지 못하고 함부로 몸을 움직인 결과 제 몸으로 위령비의 금줄을 끊고 비석을 발로 차 넘어뜨리고는 산산조각내고 만 것이다.
취기에 홀린채 몸을 어기적어기적 자꾸만 몸을 기울이며 걷더니 흥에 취해 홀로 달밤의 춤사위를 벌이며 달리던게 미처 과거 이 근방에서 고히 모시던 귀신무덤까지 이르렀다. 아이가 자라던 땅 토박이들 사이에
흉흉한 전설이 내려오던 아무개 무덤터는 어르신들로부터 부정거리로 취급하여 그 근방으로부터 수십 리에 이르는 땅 전체에 집들이 하나같이 거처를 옮겨 멀리 떠나게 만든 원흉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악전고투로부터 살아남아 이 자리에 오게된 아이에게 그런 허황된 소리가 가당찮을까. 눈앞에서 찌그러진 눈알과 마주하고 터진 두개골사이로 육즙이 붉은 것과 버무러져 진창을 만드는게 수백수천이 펼쳐졌던 과거를
상기시켜볼때 고작 이름없는 소문거리가 엄연히 살아 숨쉬는 산 자를 감히 헤칠 수 없다 호언장담하고 있던 것이었다.
그 드높은 패기는 절로 수긍이 갈 법 했다. 단지 그 속에서 또 다른 이가 숨어서 제 광기를 억누르고 있었다는걸 간파하지 못했을 뿐의 이야기다.